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므로 성경의 역사관은 구세사라고 불려진다. 이는 성경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편하다. 성경을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곧 종교사요 구세사였고 그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며 구세주의 내림을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의 구세사 개념을 깊이 인식하게 된 계기는 이집트 탈출의 경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까닭이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확신했었다. 그들의 개인적 국가적 흥망성쇄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느냐 않느냐에 달렸음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구세사가 절정에 이르면 조상들과 맺은 옛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대치되어 완성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믿음을 가졌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과 구원의 희망을 완성시키는 것을 당신의 임무로 알았고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왕국이 자신의 활약으로 도래해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구세사는 세상 종말에 부활과 심판 때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도래해 있으나(히브 1,2) 아직 미래에 완성될 여지가 남아 있다(already but not yet)고 이해했던 것이다(사도 3,21). 이를 신학 용어로 기현화종말론(旣現化終末論)이라고 한다.
교의신학적인 관점에서 구세사는 성경주석의 기준이 되고 신학적인 명제로 이해된다. 성경주석의 기준으로서 구세사는 하느님이 성경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점진적으로 해 왔으므로, 주석자는 성경적 신앙이 유기적인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시대를 구분하라, 그러면 성경 내용이 조화될 것이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신학적인 명제로서의 구세사는 ‘구세’와 ‘역사’라는 두 개념이 합쳐진 말이다. ‘구세’ 또는 구원은 인간을 소극적으로 악의 지배에서 해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재결합시키는 하느님의 행위를 말하고, ‘역사’는 인간사의 실재 과정 뿐 아니라 그 기록을 의미한다. 구세사라 할 때 구세는 역사적인 것이고 그 역사는 구세적인 것임을 뜻한다.
구원의 역사성은 3가지 명제를 포함한다.
1) 창조된 인간의 반역행위 때부터 구원행위는 새로운 창조행위로 인간역사에
나타났다는 점.
2)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인간역사의 전개 안에서 완성되어 간다는 점.
3) 한때 행해진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실현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구세사의 과정에 참여한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구원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지속됨으로써 현재에 사는 온 인류는 과거의 구원사건과 관련을 맺는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작고 평범한 민족과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기술되어 있으며, 특히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말씀을 의식하면서 살아온 역사의 압축이라고 하겠다.
비록 이스라엘의 역사가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전에 밀려든 용감했던 소수 국가들의 역사보다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구약성경이 단순히 세속의 역사나 문화를 다루기 위하여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에게 역사적인 체험을 신앙으로 해석하여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밝혀내는 거룩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 안에서 하느님께서 활동하신 것이며, 하느님의 의도가 실현된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만남에 대한 증언이고, 이 역사는 일어난 일의 연대기적인 서술이라고 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구원업적과 관계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이 역사를 구원의 역사 혹은 구세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세사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비록 역사적 고증은 불가능하겠지만, 천지창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성조시대는 B.C.2000-1700년경의 청동기시대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이집트 탈출 시기는 B.C.1250-1230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하여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200년경에 여호수아의 영도로 가나안을 정복하고 지파별로 땅을 차지하게 됨으로서 1025년까지 혼란한 판관시대가 지속되었는데,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역사는 왕정시대부터이다.
이스라엘은 지파동맹국으로서 왕국이 설립되었고, 이 왕가들을 정복하고 난 후부터 남북지파를 합쳐서 단일 왕국으로 통일하게 된다. 그 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국의 조직을 정비하였으나 B.C. 933년에 솔로몬이 죽으면서 이스라엘의 북쪽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한 이스라엘이 되고, 남쪽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유다로의 두 왕국으로 분리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 후, 722년에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에게 패망하게 되면서 유다는 587년에 바빌로니아의 네브카드네자르에게 항복하고 유배생활을 맞게 되는데, 이후 49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 동안, 이스라엘은 영토와 임금을 모두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한편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538년에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한다는 칙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키루스 칙령이라고 하며, 그 이후 귀환한 유다의 백성들은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333년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중동제국을 정복하면서 가나안은 다시 그리스의 지배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리스의 문화와 언어가 이 지방에 널리 침투하게 된다.
한편 안티오코스 4세가 유다인의 종교법 준수를 위하여 사형과 벌로 종교박해를 167-164년 사이에 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 유다 바카베오 등이 저항하여 봉기함으로써 유다의 역사는 이때부터 다시 확실해지고 164년에는 잃었던 자유를 다시 찾게 되었지만, 63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유다는 다시 주권을 빼앗기고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몰락하게 되면서, 기원전 37년~기원후 4년 사이에 헤로데가 정권을 잡으면서 로마와 결탁하여 유다를 지배하게 된다.
기원전 6~4년경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유다가 계속 항전하는 가운데 기원후 70년 유다전쟁으로 예루살렘은 멸망당하는 비운 곳에 성전이 파괴되고, 기원후 72~73년까지 마사다 항전을 계속하였으나 로마에 의하여 진압된다.
이처럼 이스라엘 역사는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전에 밀려들었던 용감했던 소수 국가들의 의사보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겠으므로 구약성경은 단순히 세속의 역사나 문화를 다룬 책이 아닌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에게 역사적인 체험을 신앙으로 해석하여 궁극적인 의미를 밝히려는 거룩한 역사이며,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 안에서 하느님께서 활동하신 것으로서 하느님의 의도가 실현된 것이 성경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하느님과의 만남에 대한 증언이며, 이 역사는 일어난 일을 연대기적인 서술이라고 하기보다 하느님의 구원업적과 관계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역사를 구원의 역사 또는 구세사라고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BC 1800~1600)
어느 민족이든지 그 민족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발자취가 있듯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는 구약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그 민족 구성원들만의 인간적인 기록뿐 아니라 대부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 선택, 계약, 예언, 성취, 상과 벌 등의 주제들과 결부되어 그 역사가 전개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그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의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는 역사, 즉 구세사(救世史) 혹은 구원사(救援史)라고 한다.
1. 구원사(救援史)
구세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1)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구원
이 단계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ㅡ이사악ㅡ야곱으로 이어지는 성조들과 야곱의 열두 아들들, 그리고 모세와 다윗을 통해 계약을 맺으시며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시키고 그 민족과의 관계에서 하느님의 인류구원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은 구세주 대망 사상으로 초점이 모아짐을 보여주고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구원
이 단계는 하느님의 아드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활동 시대이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즉 구세주로 오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현되었음을 보여준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회개와 구원적 활동에 대해 다룬다.
3)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통해 제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 부활을 통한 구원적 파스카 체험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공동체를 탄생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복음 선포로 세상 곳곳에 교회가 설립되고 발전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며 펼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면 여기서 구원의 첫 단계인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구원을 살펴보자.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을 온갖 굴레와 억압으로부터 온전히 해방시켜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참 하느님을 섬기며 구원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시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역사에 들어가기 전에, 아담 이후 인류가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지를 성경에 간략하게 묘사된 것을 살펴보자(창세 4ㅡ11장 참조).
2. 인류의 간략한 계보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자녀를 두었는데 카인과 아벨이었다. 맏아들인 카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고, 둘째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때가 되어 카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은 반기셨으나 카인의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카인이 하느님께 꾸중을 듣자, 아벨을 들로 데리고 가 그를 죽였다(창세 4,1-8).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아벨의 의로운 피의 부르짖음에 대한 대가로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하셨다.
한편 아담과 하와는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셋은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에노스가 비로소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기 시작하였다(창세 4,25-26). 그 후 셋 후손들의 계보가 나오는데 이들은 홍수 이전의 족장들로서 수명이 구백 년부터 점차 줄어들어 간다. 셋의 아들 에노스로부터 7대에 걸쳐 노아에 이르게 된다. 노아를 낳은 라멕은 777년을 살고 죽는다(창세 5장 참조).
한편 땅위에 사람들이 불어나면서 딸들이 태어나자, 하느님의 아들들이 그들을 아내로 맞아 나필족이라는 거인족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람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 하시며 인간의 수명을 줄였다(창세 6,1-4).
세상 사람들이 죄악의 생활로 가득 차고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 6,5-7). 그러나 노아만은 올바로 살면서 주님의 눈에 들었다. 하느님께서는 악과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노아와 그 가족들만은 구해주셨다. 40일 동안 계속된 홍수로 인해 물이 150일 동안 땅 위에 괴어 있었으며 땅 위의 모든 생물들은 죽었다.
노아와 그 후손은 하느님의 은혜로 방주 안에서 살아남았으며, 노아는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쳤다. 하느님께서는 무지개를 계약의 표징으로 내세우시며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창세 9,11) 라고 하셨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창세 9,16). 이리하여 노아와 그 후손들로부터 새로운 인류가 퍼져나가게 된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펫을 오백 살 때 얻는다. 성경은 ‘이 셋이 노아의 아들인데, 이들에게서 온 땅으로 사람들이 퍼져 나갔다.’(창세 9,19)고 한다. 노아는 그 후 350년을 더 살아 950세에 죽었다(창세 9,29).
그 후 사람들은 한 가지 말을 쓰면서 바벨탑을 지어 이름을 날리려 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버리시어 그 계획을 무너뜨리신다(창세 11,1-9).
3.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성조 시대(기원전 1800~1600)
1) 아브라함(아브라함과 사라)
이스라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브람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브람은 노아의 세 아들 중 셈족에 속하는데, 셈의 9대 손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시리아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 생활을 하였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기원전 19~17세기에 해당한다.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는 자기 아들 아브람과 하란, 그리고 하란에게서 난 손자들과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를 데리고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서 자리 잡고 살았다.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는 250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는다(창세 11,31-32). 이때 주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어 그를 통해 큰 민족을 형성할 계획을 말씀하신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1-3).
아브람은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님을 믿고 길을 떠난다. 길을 가는 도중 조카 롯이 전쟁 중에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아브람은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쫓아가 롯을 구하고 그의 모든 재물과 식솔들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를 맞이하러 나온 살렘 임금 멜키체덱에게 자기 재산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 멜키체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창세 14,18)였으며, 그는 아브람에게 축복하며 복을 빌어 주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아브람은 복을 받으리라. / 적들을 그대 손에 넘겨주신 분 /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창세 14,19-20).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으며(창세 15,6), 주님께서 아브람의 나이 99세 되던 해에 그와 계약을 맺으시며 그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통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으로 바꾸어 주신다(창세 17,4-8).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표징으로 모든 남자 후손들은 모두 할례를 받도록 하신다(창세 17,9-14).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시며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당시 사라의 나이는 99세이었으므로, 이렇게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고 웃었으나, 약속대로 그 다음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이사악’(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이라 하였다(창세 21,5-7).
한편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얻기 전 86세 때 사라의 이집트 몸종 하가르로부터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는데, 사라가 이사악을 낳자 그를 내보냈다. 그 후 아브라함은 백 세 때 약속의 아들로 받았던 사랑스런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신앙의 시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전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오히려 이사악을 구하고 하느님의 신임을 두텁게 받게 된다(창세 22,1-28).
2) 이사악(이사악과 레베카)
이사악은 아내 레베카를 맞아 쌍둥이 아들 에사우와 야곱을 둔다. 에사우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고, 야곱은 이사악의 축복을 받는다.
3) 야곱(야곱, 레아와 라헬)
야곱은 레아와 라헬 두 딸을 가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칠 년을 일하였으나 그 외삼촌의 계략에 의해 레아를 아내로 맞았다. 그의 외삼촌은 야곱의 결혼 첫날밤에 라헬 대신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던 것이다. 야곱이 항의하자 라반은 일주일간의 초례 기간이 끝나고 칠 년 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둘째 딸 라헬을 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야곱은 도합 14년간 일하여 외삼촌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레아에게는 몸종 질파를 라헬에게는 몸종 빌하를 주어 돌보게 하였다.
4)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야곱은 두 부인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들의 몸종 질파와 빌하 사이에 모두 열두 아들을 두게 된다. 레아에게서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그리고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는 단, 납탈리가 태어났다. 그리고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가드, 아세르가 태어났으며, 라헬에게서는 요셉과 벤야민을 두게 된다.
이제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헤어져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프니엘이라는 곳에서 하느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기고 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야곱은 두 부인과 그의 두 몸종들로부터 모두 열두 아들을 두었다.
5) 요셉
야곱은 열두 아들 중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러자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시기하였다. 하루는 요셉이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 절을 하더군요”(창세 37,9)라고 꿈 이야기를 하자 형제들이 더욱 질투하게 되었다. 결국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려 이집트의 경호대장에게 넘겨지게 된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면서 많은 신임을 받았으며, 특히 꿈을 잘 해석하여 크게 성공하게 된다. 나중엔 파라오가 꾼 꿈을 잘 해몽하여 이집트 왕국의 재상까지 된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대로 7년간의 풍년동안 곡식을 잘 저장하여 그 후 이어질 7년간의 흉년에 잘 대비하였다.
이때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하러 온 그의 형제들을 만나게 되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이집트로 모셔오게 한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가장 좋은 곳인 고센 땅 라메세스 지방에 살게 하고 요셉의 첫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야곱의 아들 항렬로 올려 축복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는 속하지 않는다. 야곱은 이집트 땅에서 열두 아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주고 세상을 떠났으며 가나안 땅 막펠라라는 곳에 묻혔다.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리브가 그리고 그의 아내 레아가 묻혀 있는 곳이었다(창세 49,29-33).
요셉도 이집트 땅에 와 있는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에게 선정을 베풀다가 110세에 죽어이집트 땅에 묻혔다. 그러나 나중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실 때 자기 뼈를 가지고 가도록 유언을 한다. 여기까지가 이스라엘 성조들의 이야기이다.
요셉의 형들은 야곱이 죽자 요셉이 복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요셉은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창세 50, 21-22)라고 형제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요셉의 이 말처럼 하느님은 인간들의 잘못과 실수를 오히려 더 좋게 꾸미시어 선과 행복으로 갚아 주신다.
♱성경의 가르침
*하느님과 아브라함과의 계약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3-8).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기원전 1290~1020)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고 획기적인 사건은 출애굽(기원전 1290년)이다. 출애굽이란 이집트 탈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집트로 들어간 히브리인들이 비옥한 땅 고센 지방에 살며 계속 인구가 불어나자 이를 두려워한 이집트인들이 히브리인들을 억압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1.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 들어온 지 400년이 지난 후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이집트 왕이 등극하자 그는 히브리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이집트 강물에 던져 죽게 하였으며(탈출 1,22), 히브리 사람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종살이를 시켰다(탈출 1,9-14). 이때 히브리 레위 가문에서 탄생한 모세는 이집트 강물에 던져졌으나 구출되어 이집트 공주(파라오의 딸)의 궁전에서 성장하였다(탈출 2,1-10). 성년이 된 모세는 밖에 나갔다가 동족이 고생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으며,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였다(탈출 2,11-12). 이 일이 탄로 나게 되자 미디안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서 이트로(르우엘) 집안 치포라를 아내로 맞이하고 양치는 목자가 되어 살게 되었다.
1) 모세의 하느님 체험과 소명
어느 날 모세는 양떼를 이끌고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가 불꽃이 이는 떨기 한가운데에 나타나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집트 땅에서 고생하고 신음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오라는 사명을 주고(탈출 3,1-12),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 즉 “나는 있는 나다.” 라는 분으로 계시하신다(탈출 3,13-15).
모세는 기적을 행할 힘을 받고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하여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가서 히브리인들을 내보내 달라고 청한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아홉 가지 재앙, 즉 ① 물이 피가 되게 함, ② 개구리 소동, ③ 모기 소동, ④ 등에 소동, ⑤ 가축병, ⑥ 종기 ⑦ 우박, ⑧ 메뚜기 소동, ⑨ 어둠(탈출 7,14ㅡ10,29)을 차례차례 보여주며 청하였다. 그러나 파라오는 계속 마음이 완고해져 고집을 부렸다.
2) 파스카 사건
마침내 열 번째 재앙은 과월절에 치른다. 히브리인들의 문설주에는 양의 피를 발라 두었는데 하느님의 천사가 이것을 보고 ‘거르고 지나감’(파스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이집트인들의 집안에 들어가서는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죽였다(탈출 12,29).
이를 본 파라오는 마침내 히브리인들을 석방하여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히브리인들은 모세의 인도로 홍해 바다를 건너게 되고, 추격해 오던 이집트 군대를 홍해 바다 속으로 따돌리고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탈출 15,1-21).
2. 광야 생활과 시나이 계약(기원전 1290~1250년)
1)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지 한 달 후 시나이 산 근처의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어 그들을 먹여 주셨으며(탈출 16,1-36), 르피딤에 이르러서는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여 먹을 물을 마련해 주셨다(탈출 17,1-7).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고도 부른다.
2) 십계명
그 후 모세는 장인 이트로의 충고대로 원로들을 세워 통치하였으며,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는다(탈출 20,1-17). 이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의 조건이었다(탈출 24,1-11).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는 계약이었다.
3) 법령의 제정과 제사 규정
그밖에 모세는 하느님의 분부대로 여러 가지 법령을 제정하고 성소와 성막, 계약 궤, 제단, 제복, 사제복 친교제, 제사 규정을 정하였다(탈출 25ㅡ31장).
4) 우상 숭배와 신앙의 시련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기도 하였다(탈출 32,1-29).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로 40년 간 사막(광야)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시련과 도전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행군하게 된다.
5)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께서는 거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어 그들을 먹이시고, 바위에서 물이 샘솟게 하여 마실 물을 마련해 주었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탈출 40,34-38).
3. 가나안 정착과 판관 시대(기원전 1250~1020년)
1) 모세의 죽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가다가 모압 평야에서 예리코 맞은 쪽에 있는 ‘느보 산 피스가’ 꼭대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12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신명 34,1-8).
2)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기원전 1200년)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눈의 아들 여호수아(신명 31,1-8)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에 나선다. 그리하여 요르단 강 건너 예리코를 점령하고 가나안의 여러 땅들을 차지했다(여호 1ㅡ12장). 그리고 각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 각 가문별로 유산을 차지하였다(여호 13ㅡ19장).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도록 다짐하는 뜻으로 열두 부족의 대표들이 스켐에 모여 큰 돌을 세우고 주님의 성소 앞에서 맹세하였다.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제 너희 가운데에 있는 낯선 신들을 치워 버리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마음을 기울여라.” 하자,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여호 24,22-24). 여호수아는 이 일을 마치고 110세에 죽었으며, 그의 생전에이스라엘 백성은 줄곧 주님을 섬겼다(여호 24,29-31).
3) 가나안의 토속신들과 신앙의 위협
여호수아가 죽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의 발달된 농경문화와 그 주민들이 섬기던 바알(Baal) 신과 토속 신, 풍요 신(아스타롯 신, 아세라 신 등)들의 유혹에 끊임없는 신앙적 위협을 받게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신앙을 버리고 가나안의 바알신과 토속 신앙에 빠지거나 외세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판관들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하고 야훼 신앙으로 되돌려 놓곤 하였다.
4) 판관들의 지도
판관들은(기원전 1200~1020년) 이스라엘이 이직 나라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과도기에 일정한 기간 동안만 통치했던 정치적 민족적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판관 형태의 통치는 200년간 지속되었다. 오트니엘(판관 3,7-11), 에훗(3,12-30), 삼가르(3,31), 드보라(4,1-11), 기드온(6,1-40), 톨라(10,1-2), 야이르(10,3-5), 입타(11,1-33), 입찬(12,8-10), 엘론(12,11-12), 압돈(12,13-15), 삼손(13,1-25) 등 열두 명의 판관이 있었다.
♱성경의 가르침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 줄 말이다(탈출 19,4-6).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
(기원전 1020~586년)
이스라엘은 판관 시대를 거치면서 주변의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하였다. 그리하여 보다 강력한 왕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러한 요구에 따라 예언자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1.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기원전 1020~1000년)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 된 사울(1사무 9,26ㅡ12,25)은 주변의 이민족들을 무찌르고 왕위를 굳혔다. 그러나 전리품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 주님의 눈밖에 났으며, 주님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자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죽는다(1사무 15,1-35; 31,1-13).
2. 다윗 왕(기원전 1000~961년)
다윗은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주님의 영을 받아 날로 지혜와 용기가 커졌다. 청년 다윗은 필리스티아의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쳐부수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의 인기를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으며, 다윗은 망명생활을 했으나 점차적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사울이 죽은 뒤 유다의 왕이 되었다. 다윗은 기원전 천 년경 여부스인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을 제압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강력하게 발전시켰다. 주님께서 예언자 나탄을 시켜 다윗에게 왕권을 든든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전했다(2사무 7,11- 13.16 참조).
다윗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고(2사무 6,1-23), 남쪽과 북쪽의 이스라엘 부족들을 통일시켜 하나의 강력한 왕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다윗은 어느 날 밧 세바라는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여 그녀를 궁전으로 데려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리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이 치열한 곳으로 보내어 죽게 하였다(2사무 11,1-27).
이 일이 예언자 나탄에게 알려지자 나탄은 주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꾸짖었다. 다윗은 참회하여 용서를 받았으나, 이 죄로 인해 다윗의 집안에는 칼부림이 가실 날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죄로 태어난 아이는 중병에 걸려 죽게 되고 그 아들 대 이후에 왕국이 분열되리라는 예언을 받는다.
나탄 예언자의 말대로 밧 세바와의 첫아들은 중병에 걸려 죽었으며(2사무 12,16-23), 다윗 집안 당대에도 왕자들간의 칼부림(암살롬의 반란, 아도니야의 음모 등)이 그치질 않았다.
3. 솔로몬 왕(기원전 961~922년)
다윗이 다시 밧 세바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국을 굳건히 하고 발전시킨 솔로몬 왕이다(1열왕 1,28-40).
솔로몬은 지혜로운 판단과 슬기로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으며(1열왕 5,9-14),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쳤고(1열왕 5,15ㅡ6,38), 그의 재산과 위용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솔로몬은 외국 여인들을 후궁으로 두고 그들의 신당을 지었다. 그리고 시돈의 여신 아스타롯과 모압의 신 크모스, 암몬의 신 밀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쳐 주님의 분노를 샀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솔로몬 이후 왕국을 둘로 쪼개어 그중 한 지파를 통해 다윗 왕가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게 하였다(1열왕 11,11-13).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4. 왕국의 분열(기원전 922년)과 남북 왕국 시대(기원전 922~586년)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하게 된다(기원전 922년).
1) 북이스라엘 왕국(기원전 922~722년)
북왕국은 솔로몬의 신하였던 에프라임 지파 출신의 예로보암이 열 지파를 규합하고 스켐을 임시 수도로 하여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스켐, 프누엘, 티르차, 사마리아 순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분리하여 단(Dan)과 베텔(Beth el)에 성소를 세워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예배를 보게 하였다.
북이스라엘은 그 후 200년간 지속되다가 주변 강대국으로 부상한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다(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예로보암을 비롯하여 나답, 바아사, 엘라, 지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즈야, 요람, 예후, 여호아하즈, 여호아스, 예로보암 2세, 즈카르야, 살룸, 므나헴, 프가흐야, 페카, 호세아로 이어졌다. 호세아 임금 때 아시리아에 매년 바치던 조공을 바치지 않고 이집트 임금에게 사절단을 보냈다. 이렇게 호세아가 반역하는 것을 보고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멸망시켰다(기원전 722년; 2열왕 17,1-23).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자로 활동한 이는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가 유명하다. 엘리야는 아합 임금 때 활동하였으며, 엘리사는 여호람 임금 때 활약하였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당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시리아 사람들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래서 생긴 후손이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렸다(2열왕 17,24-41). 이들은 주님을 공경하면서도 각자 자기 선조들의 풍습을 지키는 혼합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2) 남유다 왕국(기원전 922~586)
왕국 분열 후 남유다 왕국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르하브암이 왕위에 올라 다윗 가문의 유다 왕국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북이스라엘보다 136년이나 오래 지속되어 그 후 총 336년 동안 왕권이 계승되었다. 남유다 왕국의 왕들로는 르하브암, 아비얌, 아사, 여호사팟, 여호람, 아하즈야, 아탈야, 요아스, 아마츠야,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므나쎄,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가 있다.
요시야 임금 때 주님의 율법서가 성전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바알, 아세라, 하늘의 별신 숭배를 척결하고 그 사제들을 추방시켰으며, 또한 아스타롯 여신상, 모압인의 크모스 신상, 암몬인들의 밀콤 신상을 철거하였다. 유다의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 때 신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왕족과 귀족, 사제들이 처참하게 바빌론으로 유배되었고, 그리하여 남유다 왕국도 멸망하고 말았다(기원전 586년). 열왕기 하권 24장 18절부터 25장 21절에서는 유다의 마지막 임금과 그 귀족들의 비참한 최후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탈인데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이었다. 치드키야는 여호야킴이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주님을 분노하시게 하였기에,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당신 앞에서 쫓아내셨다. 그런데 치드키야가 바빌론 임금에게 반역하였다. 그래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그러자 군사들은 모두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통하여 아라바 쪽으로 갔다.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예리코의 들판에서 그를 따라 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그는 치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가운데 살해하고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로 갔다. 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칼데아인들은 주님의 집에 있는 청동 기둥들과 받침대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 있는 청동 바다를 부순 뒤, 그 청동을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
이렇게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2열왕 24,18ㅡ25,21).남유다 왕국에서 활약한 예언자는 히즈키야 임금 때의 예레미야, 이사야 등이 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지은 애가를 읽어 보면 패망한 유다 왕국의 비참함에 가슴이 메인다.
아, 사람들로 붐비던 도성이 외로이 앉아 있다.
뭇 나라 가운데에서 뛰어나던 도성이 과부처럼 되고 말았구나.
모든 지방의 여왕이 부역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구나.
밤이면 울고 또 울어 뺨 위에 눈물이 그치지 않는구나.
그 모든 애인들 가운데 위로해 줄 자 하나 없고
벗들은 모두 그를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애가 1,1-2).
축제를 지내러 가는 이들이 없어 시온을 향한 길들은 비탄에 잠기고
성문들은 모두 황폐하게 되었으며 사제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젖어 있으니 시온도 쓰라려하는구나.
그의 적들은 우두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은 편안히 지내니
그의 많은 죄악 때문에 주님께서 그에게 고통을 내리신 것이다.
그의 아이들은 포로가 되어 적 앞으로 끌려갔다.
딸 시온에게서 그 모든 영화가 떠나가 버리고
고관들은 목초지를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되어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걸어갔다.
예루살렘이 제 고통과 유랑의 세월을 회상한다,
예로부터 있어 왔던 그 온갖 소중한 것들도.
그의 백성이 적의 손에 떨어질 때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적들만 그를 보며 그의 몰락을 비웃었다.
예루살렘은 무거운 죄를 지어 혐오 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 숭배자들이 그름 멸시하니 그의 치부를 보았음이라.
예루살렘 자신도 탄식하며 등을 돌려 버린다.
부정이 옷자락에 묻어 있어도 제 종말을 생각하지 않더니
기막히게 몰락하였건만 위로해 주는 이 아무도 없다.
“주님, 제 고통을 보소서, 원수가 의기양양해합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보물에 적이 손을 뻗쳤습니다.
당신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민족들이
성소로 쳐들어가는 것을 그는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의 온 백성이 탄식하며 빵을 찾고
기운을 차리려고 보물을 먹을 것과 바꿉니다.
“보소서, 주님, 살펴보소서, 제가 멸시만 당합니다.”(애가 1,4-11)
♱성경의 가르침
*다윗의 왕권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튼튼하게 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1-13.16).
이민족 지배하의 이스라엘
(기원전 586~기원후 70년)
이스라엘이 이민족에게 지배받고 노예 생활로 전락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다고 뼈저리게 뉘우쳤다. 이러한 어려움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게 된 기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가 강요될수록 나름대로 하느님을 따르고자 강력히 저항 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대제국의 위세 앞에 이스라엘의 저항은 어찌할 수 없었다. 특히 유다 마카베오가 세운 유다인 독립 왕조 하스모네 왕가가 기원전 63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자, 유다인들은 깊은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메시아 신앙이 형성되었다. 즉 메시아께서 오시어 그들을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옛날 다윗과 솔로몬이 이루었던 영광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1. 바빌론의 유배 생활(기원전 586~538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세 차례(기원전 597, 587, 582)에 걸친 유다 왕국을 침공하였다. 유다의 왕족들과 귀족들, 사제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빌론 유배 생활을 통해 그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초래되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였다. 그래서 제관들과 율법학자들을 중심으로 할례와 율법을 더욱 잘 준수하고, 이스라엘의 전통을 찾고자하는 유다이즘이 나타나게 된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모두 멸망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계약을 맺어 참 하느님을 섬기는 하느님의 백성이 탄생할 것을 희망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죽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3,31-33).
에제케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오면, 주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주님께서 우상으로 묻은 때를 깨끗이 씻겨 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이끌어 줄 것을 예언했다(에제 36,22-28).
유다인들은 정복자의 땅 바빌론에서 6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 후 새롭게 중동의 강국으로 등장한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렸다.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는 해방 칙령을 내려 유다인들로 하여금 옛 유다 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2역대 36,22-23).
2. 페르시아 치하의 이스라엘(기원전 538~333년): 유다이즘의 형성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이 중동의 패권을 잡자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키루스 임금은 종교 정책에 개방적이었으며 기원전 538년에 이스라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내렸다(에즈 1,1-11).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을 짓고 살도록 허락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즈루빠벨의 지도하에 기원전 520년부터 515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고, 기원전 516년에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며 제사를 드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율법을 준수하는 일에 게을러지고 신앙의 유혹에 자주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유다 총독으로 있던 느헤미야는 기원전 430년경 유다인들에게 율법과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고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했다(느헤 13,1-22). 그리고 선비이며 사제인 에즈라도 사람들 앞에서 모세의 법전을 읽어주고 해설해 주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공부하도록 깨우쳐 주었다(느헤 8,1-18).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연구하고 준수하는 데 큰 의의를 두었으며, 모세오경도 이때 최종적으로 집대성되었다(기원전 400년경). 국가와 통치제도도 없이 페르시아 치하에 있었으면서도 유다인들이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로 철저하게 결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유다이즘이 형성되고, 예언자들의 역할은 감소하고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3. 그리스 치하의 이스라엘(기원전 333~63)
이스라엘은 기원전 333년 새로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그리스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년)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곳곳에 그리스 문화와 언어를 유포시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시켰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죽게 되자 왕국은 셋으로 나뉘었다. 그리스 지역은 안티고니드 왕조, 이집트는 라지드 왕조, 시리아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들어섰다. 이스라엘 지역은 이집트의 라지드 왕조에 속하여 100여 년 동안 그 지배를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라고도 하는 이 라지드 왕조는 민족의 다양성을 인정하였으므로 유다인들도 이 기간 동안에는 종교 생활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그 후 기원전 200년경 파네아 전투에서 안티오코스 3세가 프톨레마이오스를 무너뜨렸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199년 이후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차츰 종교적 박해를 받게 된다. 특히 기원전 175년에 왕위에 오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기원전 167년 이집트와 전쟁을 벌여 프톨레마이오스를 축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성전에서 금은으로 된 성물을 약탈했다. 그리고 유다교를 박해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이교 신전을 짓게 하였으며, 유다인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먹게 하였다(1마카 1,16-64).
이에 유다인들은 분개하여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이 봉기하여 이교 제사를 거부하고 투쟁하였다(1마카 2,1-70). 마타티아스가 죽자 마카베오라고 불리는 그의 아들 유다가 그의 아버지를 계승하여 여러 이스라엘 사람과 합세하여 그리스와 투쟁하였다. 그리하여 기원전 164년 12월에 성전을 정화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성전 봉헌제: 하누카 축제, 1마카 4,36-61; 2마카 10,1-13).
마카베오 형제들의 독립 전쟁은 차츰 승리를 거듭하여 독자적으로 독립 체제를 유지하면서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한 하스모네 왕조(기원전 152~63)를 수립하였다.
그리스 치하 유다인의 독립 왕조인 하스모네 왕조는 기원전 63년 로마에 의해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하스모네 왕가는 너무 욕심을 부려 정권과 대제관직을 다 차지하여 독립 운동에 가담했던 경건자(하시딤)가 바리사이파와 에세네파로 분리하게 된다.
4. 로마 제국 치하의 이스라엘(기원전 63~기원후 132년)
이스라엘은 하스모네 왕가의 지도하에 나름대로 독립된 생활을 했으나 기원전 63년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로마의 식민지가 된다. 로마의 식민정책은 그 지역의 유력한 사람을 내세워 통치하게 했는데, 팔레스타인 통치는 유다인이 아닌 이두매아인 안티파텔을 임명하였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때에는 이두매아 출신의 헤로데 왕이(기원전 43~4년)다스리던 때였다. 헤로데 왕이 죽자 팔레스타인은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세 지역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은 헤로데 아르켈라오스(Archelaos, BC 4~AD 6년)에게, 갈릴레아와 베레아 지역은 헤로데 안티파스(Antipas, BC4~AD39)에게, 그리고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은 헤로데 필리포스(Philippos, BC4~AD34)에게 할당되었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가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다가 서기 6년에 죽자 그 지역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 체사레아에 머물며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에 끊임없이 대항하였으며 특히 열혈당원(젤롯떼)들은 폭력으로 저항하였다. 유다인들은 조직적으로 규합하여 제1차 독립 운동(66~73년)을 전개했으나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히 파괴되었고, 70년에는 사제직도 폐지되고 잔인하게 진압된다. 이때의 유다인들의 마사다 항전은 유명하다. 플라비우스 요셉푸스의 유다 전쟁 기록에 의하면 960명의 유다인들이 마사다 산상에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모두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 후 유다인들은 서기 132~135년에 제2차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때에도 처참하게 진압되었다. 그리하여 로마는 유다인 분산 정책을 써서 유다인들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하였다. 유다인들은 나라 없이 1800년간을 유랑 민족으로 떠돌면서 수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1948년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역사 안에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
인류 창조 후 아담과 하와로부터 이어지는 인간들의 역사를 살펴볼 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어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음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은 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며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도 자주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와 배은망덕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때마다 예언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저질러 놓은 악을 오히려 선과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다.
이스라엘이 이민족에게 지배를 받고 노예 생활로 전락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다고 뼈저리게 뉘우치고,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가 강요될수록 나름대로 하느님을 따르고자 강력히 저항 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대제국의 위세 앞에 이스라엘의 저항은 어찌할 수 없었다. 특히 유다 마카베오가 세운 유다인 독립 왕조 하스모네 왕가가 기원전 63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자, 유다인들은 깊은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메시아 신앙이 형성되었다. 즉 메시아께서 오시어 그들을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옛 다윗과 솔로몬이 이루었던 영광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혹시 그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크게 기대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현실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를 죄와 악과 죽음에서 구원하실 구원의 메시아로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유다인들의 이러한 기대가 무너지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유다인들의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그 후 제2차 유다 독립 운동(AD 132-135)에서 나타났다. 당대의 저명한 유다 랍비인 아키바 율사는 시므온 바르코시바를 메시아로 추대하여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 시도했으나 로마 제국으로부터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나라를 잃고 세상 곳곳에 분산되어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유다인들은 아직도 그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다. 유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메시아성을 보지 못하고 유다인을 구원할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와 악과 죽음으로부터 온전히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이시며, 종말에 재림하실 분으로 믿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렵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 36,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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