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 2세 또는 키루스 대왕 (고대 페르시아어: Kūruš, 바빌로니아어: Kuraš, 엘람어: Kuraš, 아람어: Kureš, 히브리어: כורשKoreš, 라틴어: Cyrus,페르시아어: کوروش بزرگ ), (기원전 576년 또는 기원전 590년경 ~ 기원전 530년)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황제이다. 그는 이란인들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져있다. 성경에는 고레스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페르시아인의 지도자로서, 나누어져있던 2개의 이란왕국을 통합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세웠다. 그의 치세 동안 페르시아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29년 동안 통치하면서 당대의 제국들 -메디아, 신 바빌로니아, 리디아 제국을 굴복시켰고 이집트만 정복하지 못했는데 이집트 정복을 시도하다가 죽었지만 나중에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 정복에 성공하였다.
기후와 전쟁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난공불락 바빌론 공략 비결은 ‘물’ 키루스 대왕이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으나 도저히 바빌론을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 이 무더위에 물이 없다면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키루스 대왕은 날씨를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바빌론 지역은 5월부터 10월까지는 건기로 비가 전혀 오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무더운 지역으로 7월에서 9월까지는 낮 최고기온이 50도를 넘을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물이 없이는 잠시도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다. 바빌론 성은 건기 계절 동안은 유프라테스 강에 연결돼 있는 수문으로 물을 충분히 공급받았다. 그러기에 가뭄이나 식수 공급 제한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키루스 대왕은 강물의 줄기를 바꿨다. “벨사살이 대연회를 베풀고 있는 사이, 바빌론을 관통해 흐르던 유프라테스 강은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성벽 밖에 건축된 대참호 속으로 돌려졌다”(역사가 헤로도투스) 강의 물줄기를 돌림으로써 바빌론에 공급되던 식수가 봉쇄됐다. 건기로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데다가 강으로부터 물이 공급되지 않자 기근이 바빌론을 휩쓸었다. 무더위와 기갈로 병사와 시민들이 쓰러져갔다. 항복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 키루스가 바빌론에 입성한 것은 기원전 539년 10월 29일이었다.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날씨를 이용한 전술적 쾌승이었다. 전투조차 못하고 날씨에 패배한 인도정벌 키루스 대왕은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의 전쟁 기록 중에 처참한 패배를 기록한 적이 있다. 바로 인도정벌 전쟁이다. 인도원정 루트로 게드로시아 사막을 선택했다. 사막 기후는 너무나 참혹했다. 밤에는 뼈까지 스며드는 강추위, 낮에는 견디기 힘든 무더위, 강력한 모래바람은 수시로 불어왔다. 물과 식량 보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풍토병과 기근으로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인도 정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으로 돌아왔을 때 살아온 부하는 겨우 일곱 명뿐이었다. 인도와 전투조차 하지도 못하고 날씨에 대패한 전쟁이었다. 키루스 대왕에게 치명적 패배를 안긴 게드로시아 사막은 알렉산더가 인도원정에서 돌아올 때도 엄청난 병력 손실을 안긴 악명 높은 사막이기도 하다. |
제공: 국방일보 | 글: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저작권자 2010.08.26 ⓒ ScienceTime |
댓글 없음:
댓글 쓰기